김정원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음악FM 매일 09:00-11:00 (재) 매일 02:00-04:00

이번 주 초대 공연을 안내합니다.
자세한 정보를 확인하시고 월~금 생방송 도중 #9390(50원 유료문자)으로 신청해주세요.
추첨을 통해 당첨자 분들께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마감] 6/7(일)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첫 내한 공연
비회원
2015.05.04
조회 469

** 공연 신청은 <공연 신청합니다> 게시판에
제목 말머리 [요나스 카우프만] 달고 신청 사연 남겨주세요 **




1. 일시 : 2015년 6월 7일 (일) 오후 5시


2. 장소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 초대인원 : 5쌍 (1인 2매, 총 10매)


4. 작품설명 :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첫 내한 공연


- 이 시대를 정복한 오페라의 수퍼스타, 요나스 카우프만(테너)의 역사적인 첫 한국 공연!
- 실력과 외모, 흥행성의 3박자로 ‘포스트 3테너’의 프레임을 뛰어넘다!
- 세계 오페라 팬 선호도 1위, 세계 메이저 오페라 하우스 캐스팅 최우선 싱어!
- 2014년 가을 예정된 일본 투어를 2015년 초여름으로 연기하면서 생긴 틈을 한국을 위해 할애하다!


#출 연
요나스 카우프만(테너), 요헨 리더(지휘),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2015년 6월 7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의 첫 내한공연>이 개최된다. 이번 공연은 200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세계 메이저 오페라 극장과 페스티벌을 평정하며 오페라 실연과 영상, 음반 뿐 아니라 주요 리사이틀을 통해 비평계와 오페라 관객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21세기가 배출한 성악계 최고의 수퍼스타,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Jonas Kaufmann)의 첫 내한 공연이다.

● 이번 공연은 충만한 감성과 남성적 열정으로 가득한 카우프만의 오페라 아리아 콘서트로 꾸며진다. 데카와 소니를 넘나들며 세계 성악팬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명 아리아들이 프로그램으로 채워질 것이다(프로그램 세부 조율중). 음반과 영상물, 영화를 통해서나 간접적으로 체험했던 카우프만의 실체를 눈과 귀로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지휘에는 자신의 콘서트 버전 공연을 책임져온 요헨 리더(Jochen Rieder)의 지휘 아래,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내한 때마다 절정의 협연력을 선보인 유라시안 필이 반주를 맡아 고품격 오페라 콘서트의 퀄리티를 책임진다.

● 카우프만은 건강 상의 이유로 2014년 가을 일본 투어를 2015년 5-6월로 연기하면서 스케줄에 잠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세나는 카우프만을 끈질기게 설득해 일본 투어 이후 한국 공연 1회를 제작한다. 국내 여러 공연 기획사가 카우프만의 한국 공연을 추진했지만 카우프만은 자신이 신뢰하는 음악가들의 추천과 오랫동안 인간적으로 접근한 세나를 내한 공연 파트너로 선택했다.



***요나스 카우프만

2013, 2010년 독일 에효 클라식상 수상 (올해의 솔로 음반상/성악부문)
2013, 2012, 2011, 2007년 그라모폰상 4회 수상
2010년 비평가들이 뽑은 ‘올해의 성악가’상 수상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페라 팬 인기투표 1위, 세계 유수의 오페라극장 캐스팅 1순위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 관악기 클라리온처럼 시원하게 뻗어가는 고음
가창력, 연기력, 해석력, 배역에 어울리는 외모, 오페라 가수에게 요구되는 모든 것을 다 소유

1969 년 7월 10일 뮌헨 태생. 뮌헨 음대 졸업. 한스 호터, 제임스 킹 사사. 1994년 자르브뤼켄 주립 오페라 극장 전속 가수를 시작으로 20대에 베를린 코미세,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파리, 뉴욕, 런던, 빈 오페라 극장을 섭렵. 199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데뷔. 오페라 외에도 오라토리오, 오케스트라 콘서트에 자주 출연했고 2001년부터 취리히 오페라 극장 앙상블 멤버로 활동하며 점차 주목. 2006년 2월 뉴욕 메트 ‘라 트라비아타’ 알프레도의 센세이셔널한 히트로 일약 세계적인 유망주로 주목. 같은해 12월 코벤트가든 로열 오페라 ‘카르멘’ 호세의 연이은 히트로 스타덤에 오름. 2010년 바그너 축제인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로엔그린’의 연출을 맡은 한스 노이엔펠스가 주역으로 카우프만을 지목(나가노 지휘)하면서 명실 공히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 오페라 데뷔는 23세였지만 주목받은 것은 2006년 그의 나이 37세. 근 15년간 밑바닥과 앙상블 가수 생활을 견뎌온 대기만성형의 스타. 이제는 오페라가 올라가는 곳마다 매진 사례를 일으키고 독일 가곡의 리사이틀과 음반 역시 극찬을 얻고




Detail from Naver Magazine Cast [글 : 이용숙 음악평론가]

2007년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타계로 전세계는 '테너 기근'을 이야기하며 '차세대 쓰리 테너'를 조합해보려고 애썼지만, 몇 해 전만 해도 세계 오페라 계는 이런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2013년 베르디-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거치면서 이 질문에 너무도 명료한 답이 주어졌습니다. 2014년 새해에 마흔다섯 살이 되는 독일 뮌헨 출신의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오페라 팬들의 인기투표 1위, 세계 유수의 오페라극장들 캐스팅 1순위의 가수이자 2010년과 2013년, 독일 에효 클라식(Echo Klassik) '올해의 성악가'로 선정된 인물입니다.

2001년에 그가 취리히 오페라 [피델리오]의 플로레스탄 역으로 등장했을 때만 해도 오페라 팬들은 바리톤에 가까운 깊고 어두운 테너 음색에 놀라며 그 수려한 외모에 감탄했을 뿐, 10여 년 후 그가 그처럼 방대한 레퍼토리로 테너의 옥좌를 차지하리라고는 예견하지 못 했습니다. 마리아 칼라스와 마찬가지로 그의 음색은 맑고 아름다운 소리와는 거리가 먼, 어딘가가 막힌 듯 답답한 소리였기 때문이죠. 칼라스와의 공통점은 또 있습니다. ★결코 완벽하다고 할 수 없는 목소리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이끌어내 관객들을 완전히 사로잡는다는 점입니다. 칼라스와 마찬가지로 리릭과 드라마틱 배역을 넘나들며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오페라 주요 레퍼토리들을 모두 소화할 수 있다는 점도 카우프만의 대단한 장점이죠. 같은 시즌에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의 만리코 역과 바그너의 로엔그린 역을 함께 부르거나, 오늘 구노의 파우스트 역을 부르고는 며칠 후에 푸치니 [토스카]의 카바라도시 역을 노래하는 식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카우프만은 어느새 극장 전석 매진을 보증하는 최고의 상품이 되었고, 그 인기는 적어도 한동안 지속될 것 같습니다.

1969년 독일 뮌헨에서 태어난 카우프만은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부모님 덕분에 어린 시절 일요일마다 부모님, 누나와 함께 집에서 여러 음반을 들으며 음악에 빠져들었고, 그것이 유년기의 가장 행복한 추억이 되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부모님은 누나와 카우프만을 어릴 때부터 오페라극장에 데리고 다녔고, 바그너 애호가였던 카우프만의 할아버지는 바그너 음악극의 부분들을 피아노로 연주하며 노래까지 불렀다는군요. 어린 카우프만은 당연히 일찍부터 바그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나 김나지움 시절에나 카우프만은 계속 합창단에서 활동했습니다. 김나지움을 졸업하며 대학입학자격시험을 치를 때도 악기 연주 대신 성악으로 시험을 보았지만, 부모님은 카우프만이 성악가보다는 좀 더 안정된 직업을 가지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 처음에는 수학을 전공했지만, 결국 몇 학기 만에 성악으로 전공을 바꿔 1994년에 공부를 마쳤습니다. 성악 공부를 하는 동안 그는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무대에서 한두 마디 노래하고 퇴장하는 단역을 맡아하면서 생활비를 벌었고, BMW에서 운전기사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된 배역을 처음 맡은 것은 레겐스부르크 극장에서 공연한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베네치아의 하룻밤] 중 카라멜로 역이었습니다. 졸업 후 곧 독일 자르브뤼켄 오페라극장의 전속 가수가 된 카우프만은 이곳에서 2년간 주로 [마술피리] 타미노 왕자 등의 리릭 테너 배역들을 노래했죠.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카우프만의 목소리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목을 아무리 조심해도 자꾸 목이 쉬어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심각한 문제였죠. 주역 가수로 각광을 받기는커녕 자기 때문에 공연을 망치지만 않으면 다행일 정도였다고 하네요. 미국 성악 교육 전문가인 마이클 로즈의 도움으로 카우프만은 자신의 발성법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노력 끝에 마침내 타고난 목소리를 찾아 자연스럽게 소리를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카우프만은 프리랜서 성악가로 독립합니다. 극장 전속가수로 일하면 월급을 받으니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지만, 언제나 극장에서 정하는 작품과 배역을 노래해야 했죠. 하지만 카우프만은 자신의 뜻대로 역할을 골라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습니다. 다행히 독일 슈투트가르트 극장과 스위스 취리히 극장에서 노래할 수 있었고, 특히 취리히에서 2001년에 맡은 [피델리오]의 플로레스탄 역은 그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파리 국립오페라, 빈 국립오페라, 런던 코벤트가든 로열오페라, 밀라노 라 스칼라, 베를린 국립오페라, 뉴욕 메트 등으로 진출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이미 취리히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세계적인 연출가 및 가수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 오페라 가수로서 크게 발전할 수 있었죠.

카우프만의 커리어에 있어 결정적인 도약은 ★ 200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 진출로 이루어졌습니다.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역이었죠. 런던 로열오페라에서 비제 [카르멘]의 돈 호세 역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이 시기에는 물론 성악적 기량도 상당히 발전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배우 못지않은 출중한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이 관객의 몰입도를 더욱 높였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스스로를 스타로 인식하지 않았고, 계속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는 즐거움을 느끼며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스승이었던 헬무트 도이치의 피아노 반주로 독일 가곡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승승장구하며 발전해가던 카우프만은 곧 더 높이 비상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 2010년, 로엔그린 역으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데뷔하게 된 것입니다. 로엔그린 역은 이미 뮌헨 국립극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자신 있는 배역이었지만, 크리스티안 틸레만의 지휘와 한스 노이엔펠스의 연출로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던 바이로이트 공연으로 인해 카우프만은 세계가 인정하는 바그너 전문 가수로 입지를 굳히게 됩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가 모두 그에게 '비평가들이 뽑은 올해의 성악가' 타이틀을 안겨주었습니다.

이해 2010년에는 토마스 포이크트가 쓴 카우프만 전기 『정말 나 말야?(Meinen die wirklich mich?)』가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카우프만 자신 및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는 이 책에서는 특히 카우프만의 아내가 두드러져 보입니다. 그의 아내는 같은 성악가인 메조소프라노 마르가레테 요스비히로, 카우프만이 온 세계를 돌아다니는 동안 뮌헨에서 세 아이를 키우며 살죠.

이 책에서 요스비히는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부부로 함께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솔직하게 밝혔습니다. 카우프만 자신도 "공연하러 외국에 가 있을 때 공연 없는 저녁에는 홀로 호텔에서 가족을 사무치게 그리워한다”고 말합니다. 카우프만의 발성이나 창법을 비판하는 평론가들의 인터뷰들도 그대로 실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입니다.

이듬해인 2011년에는 뉴욕 메트가 2013년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겨냥해 야심차게 준비한 제임스 레바인 지휘, 로베르 르파주 연출의 [니벨룽의 반지] 프로덕션 중 [발퀴레]의 지크문트 역을 노래합니다. 초심자에게는 어렵고 지루할 수도 있는 [발퀴레]였지만, 충만한 감성과 남성적 열정으로 가득한 카우프만의 지그문트는 메트 HD 영상으로 전 세계에서 그의 모습을 지켜본 관객들을 감동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매력적인 '영웅 테너(Heldentenor)'로 그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순간이었죠. 카바라도시, 파우스트, 돈 호세, 베르테르, 로엔그린, 파르지팔, 플로레스탄… 카우프만의 이 다양한 배역들은 공연되기가 무섭게 모두 영상물로 제작되었고, 이 영상물들은 초심자들을 오페라라는 새로운 세계로 유혹하는 데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의 영상들 못지않게 어마어마한 흡인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테너가 이처럼 다채로운 역할들을 소화한 경우가 과거에 과연 있었던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테너들은 대개 타고난 멋진 목소리만 믿고 생각 없이 노래를 부른다며 '음악가 유머'를 통해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가창력, 연기력, 해석력, 배역에 어울리는 외모 등 일반적으로 오페라 가수에게 요구되는 모든 것을 다 지닌 요나스 카우프만을 향해서는 누구도 그 흔한 '테너 농담'을 던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출연하고 있는 오페라 작품과 자신의 배역에 대해 이야기하는 카우프만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음악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해석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오페라 작품의 토대가 된 문학작품을 읽는 것이 역할 해석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카우프만은 독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말합니다. 그가 자기 나름의 해석을 제안해 연출가가 이를 수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아직 평가가 끝나지 않은 가수, 레퍼토리를 여전히 계속 확장해나가고 있는 성악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겠지요. 더구나 카우프만은 미디어가 의도적으로 집중해 키워낸 스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음반업계의 지속적 불황 속에서 '스타 만들기 전략'은 필요악이 되어버렸으니까요. 하지만 그가 오페라 계에서 하나의 '현상'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특히 바그너 레퍼토리에 관한 한 세계 오페라 애호가들은 테너 클라우스 플로리안 포크트(Klaus Florian vogt)와 요나스 카우프만의 지지자들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마침 이 두 테너는 올해 '바그너'라는 타이틀로 각각 음반을 발표했습니다. 겹치는 곡도 세 곡이나 되어 비교 감상하기가 아주 좋습니다. "바그너 영웅 테너의 최고봉은 그 둘 다 아니고 바로 테너 요한 보타"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지만 말입니다.

'지상의 것이 아닌 다른 세계의 목소리', '천상의 소리' 등으로 평가되는 포크트의 한없이 맑고 서정적인 미성과 대조를 이루는 카우프만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비평가들은 카우프만에 대한 거의 모든 비평문에서 '테스토스테론 과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그것이 관객과 감상자들을 사로잡는 그의 매력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요즘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 원시적인 남성성, 바그너가 자신의 영웅 테너들에게 원했던 그 미증유의 에너지를 그의 폭발적인 가창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의 더 큰 매력은 그 폭발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타고난 좋은 소리로 생각 없이 터뜨리는 가창이 아니라 정교하게 계산된 폭발이라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카우프만은 그의 깊고 어두운 음색, 거친 숨소리, 들릴 듯 말 듯한 피아니시모, 흐느끼는 연기 등으로 상실의 고통과 멜랑콜리를 아주 빨리 관객에게 전염시킵니다. 그가 만들어내는 음 하나하나가 결코 자연스러운 소리가 아니라 얄미울 정도로 잘 조절된 소리라는 것입니다.

베르디 레퍼토리에 관해서라면 카우프만에 대한 비판은 더욱 거세집니다.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중 테너 마르셀로 알바레스나 표트르 베찰라가 부른 음반의 '아, 그래요, 사랑하는 그대여(Ah! si, ben mio)' 한 곡만 카우프만의 같은 곡과 비교해 들어봐도 명확한 차이를 알 수 있죠. 이탈리아어의 밝은 모음을 카우프만은 결코 밝게 부르지 않기 때문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그 때문에 그의 베르디에 관해 호불호 역시 선명하게 갈립니다.

2012년에 카우프만은 지속적인 기관지염으로 4월부터 6월까지 스케줄 대부분을 취소해야 했습니다. '목소리의 황제'라 불리는 저명한 비평가 위르겐 케스팅은 "갈채와 인정에 중독되어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카우프만이 예전처럼 자유롭게 노래하지 못한다"고 비판합니다. 네트렙코나 비야손, 도밍고 같은 인기 성악가들과 비교해도 현재 카우프만은 그들의 두 배나 많은 살인적인 공연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는 것이죠. 게다가 해외 스케줄 사이에 단 며칠 시간만 나면 가족을 보러 뮌헨으로 달려가는 버릇 때문에 더욱 과로가 심해진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카우프만 자신은 "나는 이제 옛날과 달리 내 목소리를 완벽하게 알고 있고, 내 의지 대로 소리낼 수 있다"며 최고의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디 그가 너무 빨리 목소리를 잃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요헨 리더(지휘자)
브레멘 오페라에서의 프로 지휘 경력을 시작으로 바이로이트 축제,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 파리 국립 오페라, 뮌헨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등에서 지휘 활동을 활발히 하는 오페라 전문 지휘자이다. 요나스 카우프만과는 프라하, 아테네, 코펜하겐, 에센에서의 연주 인연을 이어오며, 그의 전담 지휘자로 활발히 활동 중 이다.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유라시안 필하모닉은 '97 서울 국제음악제' 데뷔 후, 2000년부터 본격적인 연주활동을 시 작하여 2005년 40개 지역 136회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침으로써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 국민오케스트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음악감독 금난새의 창의력 넘치는 아이디어와 연주자 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한 조화 있는 연주는 매 공연 청중을 클래식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