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원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음악FM 매일 09:00-11:00 (재) 매일 02:0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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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2/15(토) 자비네 마이어 & 쾰른 필하모닉
비회원
2014.01.20
조회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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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시 : 2014년 2월 15일 (토) 저녁 8시


2. 장소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 초대인원 : 5쌍 (1인 2매, 총 10매)


4. 작품설명 :

카라얀이 선택한 클라리넷 여제, 독일 관현악의 숨겨진 보석
자비네 마이어 & 쾰른 필하모닉



***프로그램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알프스 교향곡





한국에서 처음 듣는 독일 본고장의 ‘알프스 심포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 기념

명확한 서열이 존재하는 독일 악단계에서 당당히 1급(*별표 참조)으로 평가되어온
쾰른 필하모닉(Gurzenich-Cologne Philharmonic)의 첫 내한공연

1827년 창단된 쾰른 필하모닉은 헤르만 아벤트로트, 귄터 반트, 마렉 야노프스키를 음악감독으로 거치면서 실제의 음, 단원의 기술 수준, 본거지 쾰른을 비롯한 독일 국내에서 얻은 일반적 평가를 종합할 때 동향의 쾰른 방송교향악단(WDR Symphony Orchestra Cologne, 유카 페카 사라스테 음악감독)보다 뛰어날 뿐 아니라 지금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전통의 ‘독일적 음향’을 유지하고 있다는 면에서 밤베르크 심포니와 어깨를 견주며 독일 내 강소도시의 음악적 수준을 한껏 뽐내고 있다. 이번 내한에는 욈스 레이블의 연작을 통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가 참가한다. 슈텐츠는 2014년 탄생 150주년을 맞이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남긴 불후의 명곡 ‘알프스 교향곡’을 지휘한다. 지금까지 해외 오케스트라가 한국 땅에서 단 한 번도 연주한 적 없는, 이름 그대로 장대한 스케일의 대곡이다. 지금껏 국내 팬들이 경험하지 못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관현악의 아득한 깊이를 공연 현장에서 직접 만끽할 것으로 기대된다.

협연에는 이 시대 최고의 클라리네티스트로 첫 손에 꼽히는 자비네 마이어가 나선다. 마이어로서는 08년 서울시향 협연 이후 6년 만의 두 번째 내한이다. 카라얀의 지원으로 베를린 필 단원으로 입단했지만 평지풍파를 일으키며 퇴단한 그녀의 음악 인생은 단순히 가십으로 잊혀질 게 아니다. 여전히 최고의 솔리스트임을 증명할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이 준비됐다.





■ 쾰른과 오케스트라
쾰른은 라인 강에 면해 있는 도시로 역사상으로는 가톨릭 중심지이며 수상 아데나워의 연고지이다.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오데코롱의 발상지이며 클래식 팬들에게는 가리 베르티니가 이끌던 쾰른 방송 교향악단(WDR Symphony Orchestra Cologne, 유카 페카 사라스테 음악감독)의 거점으로 유명하다. 기차로 20분 거리인 본과 뒤셀도르프에 비해 이 오랜 도시가 잘 알려지진 않은 편이다. 쾰른에는 쾰른 방송교향악단 외에도 평가 순위로는 그것을 능가하는 쾰른 필하모닉(Gurzenich-Cologne Philharmonic, 이하 쾰른 필)이 존재한다.




■ 쾰른 필하모닉
[Cologne Philharmonic, Gurzenich Orchestra, Gurzenich-Cologne Philharmonic] 등의 다양한 독-영문 명칭으로 불린다. 2014년 내한공연의 모든 인쇄물 국문 표기는 [쾰른 필하모닉]으로, 통일하기로 한다.





■ 쾰른 필하모닉의 역사
쾰른 필은 1827년 창립한 유서 깊은 악단으로 1887년에는 브람스 2중 협주곡, 1895년에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1904년에는 말러 교향곡 5번을 초연했다. 1952년 이래 귀르체니히 회당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악단명에 귀르체니히가 붙기 시작했다. 유명한 쾰른 대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귀르체니히 회당은 15세기의 중엽 6년간에 걸쳐 만들어진 시민들의 연회장으로, 여러 가지 역사적인 행사가 이곳에서 열 렸다. 그러나 16세기 초엽부터는 상품 창고로 전락했다가 그 후 다시 회장과 공연장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쾰른 필을 설립 한 것은 쾰른 콘서트 협회였다 이 조직은 오케스트라보다 30년 전 1827년 쾰른의 부유 시민을 중심으로 애호가들이 창립했다. 그들은 오케스트라와 단원의 경제 기반을 지키고 콘서트 프로그램을 만들어, 작곡가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그들의 작품을 쾰른 필이 연주하는 선순환을 이뤘다. 이때 쾰른 필과 관계를 맺은 작곡가들이 베를리오즈, 차이콥스키, 멘델스존, 브람스, 베르디, 말러, R. 슈트라우스 등이다, 시민의 자발적 의지로 음악가-작곡가를 후원하는 쾰른 콘서트 협회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쾰른 필과 쾰른 시민의 음악 생활의 레벨은 상상하기 어렵다.





■ 귀르체니히
귀르체니히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 주의 역사 도시 쾰른에 있는 건물 이름이다. 콘서트와 각종 문화 행사, 국제회의 등이 주로 개최된다. 1441년에서 1447년에 걸쳐 시립 연회장으로 건축되었다. 귀르체니히라는 건물의 명칭은, 건물이 지어진 부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귀족 가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건물 자체는 귀르체니히 가문의 소유가 아니었고 쾰른 시가 주도해 세운 시립 건물이었다. 건물이 세워질 당시 귀르체니히의 주요 기능은 왕실의 행사와 귀족들의 모임을 개최하는 것이었다. 즉위식과 독일 제국 의회 회의 등이 열리기도 했다. 1474년에는 프리드리히 3세, 1486년에는 막시밀리안 1세가 다녀갔다. 16세기 들어 상품 보관 창고로 잠시 사용되기도 했고 1645년부터는 일시적으로 백화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세기에는 주민들의 축제 공간으로도 이용됐다. 좋은 방이라는 뜻의 '구테슈투베'(gute Stube)라는 별칭도 얻게 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으나 1952년에서 1955년에 걸쳐 재건되었다. 재건축 공사는 루돌프 슈바르츠(Rudolf Schwarz)가 맡았다. 이때부터 쾰른 필이 이곳을 본거지로 공연을 시작했다. 귀르체니히는 1,338석을 갖춘 대형 홀을 비롯해 490석을 갖춘 소형 홀과 250석을 갖춘 이사벨 홀 등 모두 6개의 홀로 구성돼 있다. 1996년에서 1998년까지 건물의 현대화 작업이 이루어졌다. 당시에 건물 외벽에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 건물 내부에는 모두 다섯 개의 연회장이 있으며, 최대 1,338명을 수용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쾰른 카니발 협회와 쾰른 필, 합창단이 이 건물에 상주하고 있다. 390㎡ 규모의 와인 저장고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 쾰른 필 역대음악감독
콘라딘 크로이처 Conradin Kreutzer (1840-1842)
하인리히 도른 Heinrich Dorn (1843-1849)
페르디난트 힐러 Ferdinand Hiller (1850-1884)
프란츠 뷜너 Franz Wullner (1884-1902)
프리츠 슈타인바흐 Fritz Steinbach (1903-1914)
헤르만 아벤트로트 Hermann Abendroth, GMD (1915-1934)
오이겐 파프스트 Eugen Papst (1936-1944)
귄터 반트 Gunter Wand, GMD (1945-1974)
유리 아로노비치 Yuri Ahronovitch (1975-1986)
마렉 야노프스키 Marek Janowski (1986-1990)
제임스 콘론 James Conlon, GMD (1990-2002)
마르쿠스 슈텐츠 Markus Stenz, GMD (2003-present)





■ 쾰른 필하모닉의 현재 : 쾰른 필은 단지 옛날의 실적을 과시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명확한 순위가 존재하는 독일 악단계에서 당당히 1급으로 평가되어 왔다. 실제의 음, 단원의 기술 수준, 본거지 쾰른을 비롯한 독일 국내에서 얻은 일반적 평가를 종합하면 쾰른 필은 쾰른 방송교향악단보다 뛰어나다. 그뿐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전통의 ‘독일적 음향’을 유지하고 있다는 면에서 고색창연하고 아름다운 운하의 마을, 밤베르크 심포니와 어깨를 견준다. (2009년 1월호 FOCUS 기준 독일 내 8위)




■ 독일적 음향이란?
독일적 음향’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1990년대 쾰른 필의 음악 감독이었던 마렉 야노프스키(1939-, 볼프강 자발리시 제자)의 말에 의하면 ‘독일적 음향’은 철저한 독일식 관악기 사용(관악기의 대부분은 프랑스식 악기가 많다), 옛날부터 관습적으로 행해온 연주 기법의 준수, 그리고 극장과 깊은 연계성과 같은 종합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쾰른 오페라 극장에서 연주할 때는 페터 슈나이더, 제임스 콜론, 아담 피셔 등이 주로 지휘를 담당했고 야노프스키는 오페라가 아닌 콘서트 오케스트로 악단의 지휘를 맡아 왔다. 고딕 양식의 대성당과 100만의 인구, 루르 공업지대의 중심지로 사회 민주당의 거점인 이 도시에 쾰른 필의 고풍스럽고 전통적이며 향수어린 음향은 정말 잘 어울린다. 쾰른 필은 귄터 반트와도 관련이 깊다. 반트는 쾰른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악단에 독일 색채를 심화시켰고 마렉 야노프스키, 마르쿠스 슈텐츠 등의 음악감독과 제임스 콘론, 드미트리 키타옌코 등이 감독과 객원 지휘를 거듭하면서 통독 이후에도 독일 명문 악단의 입지를 확고히 유지하고 있다.







■ 클라리네티스트 : 자비네 마이어 (Sabine Meyer)

1959년 독일 뷔르템베르크 크라이스 하임 태생. 어릴 때 부터, 친오빠 볼프강 마이어(Wolfgang Meyer-현 칼스루헤음대 교수)와 함께 클라리넷 주자였던 아버지에게 클라리넷을 배웠고, 11살이 되던 해에 슈투트가르트 음대에 진학하여 오토 헤르만(Otto Hermann)을 사사하였다. 이후 하노버 음대(Hochschule fuer Musik und Theater Hannover)에서 당대 독일 최고의 클라리네티스트, 한스 다인저(Hans Deinzer)로부터 오빠 볼프강 마이어, 그리고 현재의 남편인 라이너 벨레(Reiner Wehle)와 함께 사사했다. 16살 때에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Bayerische Rundfunk Symphony Orchestra)에 입단한 이후 베를린 필에 솔로 단원으로 입단했지만 솔리스트로서의 활동을 더 하기 위해 곧 탈퇴했다. 이후 수많은 콘서트와 방송 출연으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았다. 유럽의 주요 음악 도시들과 일본 미국 등의 주요 오케스트라에 20여년에 걸쳐 정기 연주회 협연자로 활동 중이다. 1983년 오빠-남편과 함께 클라리넷 3중주단 '트리오 디 클라로네'를 결성하기도 했다.

독주자로서 국제적인 평가는 매우 높다. 독일 오케스트라는 물론, 빈 필, 시카고 심포니, 런던 필, NHK 교향악단, 스위스 로망드, 베를린 필, 바젤, 바르샤바, 프라하, 부다페스트의 각 방송 오케스트라 등과 수많은 앙상블과 협연을 거듭한다. 실내악 분야에 특히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임해, 하인리히 쉬프, 기돈 · 크레머, 안스네스, 파질 세이, 하겐 콰르텟, 도쿄 사중주,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 등과 공연하고 레퍼토리를 넓혀왔다. 재즈 클라리넷 연주자 미하엘 리스러와 공동 출연하는 혁신적인 프로젝트에 의해 레퍼토리를 더욱 확장했다. ’바흐 2000'라는 제목의 크로스오버 프로젝트(EM)을 성공시켰고 1920년대 음악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 ‘파리 메카닉’을 수행했다. 1988년 자비네 마이어 관악 앙상블을 결성해서 세계 각지에서 주요한 관악기 연주자들이 모여 함께 연주한다. 독일 내외에서 정기적으로 콘서트를 열고 클래식에서 컨템포러리까지 넓은 레퍼토리를 다루고있다. 혼합 편성의 ‘앙상블 콜라주’는 벤저민 슈미트, 울프 램 크리스토, 클레멘스 하겐 등 현악기 동료가 마이어와 함께 하고 있다. 현대 음악에도 열성적으로 장 프랑스, 에디슨 데니소프, 해럴드 겐츠마, 호소카와 토시오, 니콜로 카스티료니, 만프레트 토로얀, 알베르토 라이먼을 비롯한 수많은 작곡가가 그녀에게 작품을 헌정했다. 2008년 2월에는 외트뵈시 작곡, 두 대의 클라리넷을 위한 협주곡을 오빠 볼프강 마이어와 함께 세계 초연했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일본, 미국에서 정기적으로 마스터 클래스를 실시하고 있으며 1993년부터 뤼벡 음악 대학 교수를 맡고 있다.

녹음도 최근까지 EMI 클래식에서 실시하고 있다. 수록 작품은 바로크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폭 넓으며 클라리넷을 위해 쓰여진 중요한 솔로 협주곡과 실내악 곡을 모두 망라하고 있다. 에코 클래식 상을 7회 수상하고 '올해의 기악 연주자'로 4회 수상했다. 요한 슈타미츠와 칼 슈타미츠의 클라리넷 협주곡, 아바도 지휘 베를린 필과 녹음 한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와 베버, 멘델스존 작품 등이 수상작이다. 올레그 마이젠베르크와 프랑스 듀오 작품, 엠마누엘 파후드와 닐슨 작품집 (협주곡과 실내악 곡), 그녀의 제자인 줄리앙 비스와 슈포어 협주곡 등이 있다. 니더작센 상을 수상하고 2001년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브람스 협회 브람스상을 수상했다. 함부르크 예술 아카데미 회원. 07 년9 월에는 니더작센 학술 문화 장관인 러츠· 슈트 루트만으로부터 니더 작센 주 프레토리우스 대상을 수상했다.





■ 베를린 필, 입단 스캔들
마이어는 1981년 1월, 베를린 필 수석 클라리넷 연주자 오디션을 받는다. BPO에 수석 클라리넷 연주자가 공석이 발생했던 자리였다. BPO의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였던 카라얀은 마이어에 강한 관심을 나타냈고 지명에 의해 불과 23세의 나이로 선발됐다. 그러자 베를린 필내에서 평지풍파(平地風波)가 일어났다. BPO 악단의 총무는 "마이어의 소리는 BPO 관악기 연주자에게 필수적인 두께와 융합 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밝혔지만 성차별적 요소와 카라얀의 단원 임용에 대한 반발이 배경으로 함께 했다. 마이어의 1년짜리 임시 채용이 단원들의 투표로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이어는 카라얀과 BPO의 미국 공연에 객원 수석 클라리넷 연주자로 참여했다. 1982년 여름 카라얀은 블라인드 오디션으로 마이어와 바이올린 여자 단원을 입단시키려 했으나 가을 BPO 악단원 전원에 의한 투표에서 마이어는 입단이 부결되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첫 여성 단원이라는 경력에 대해 마이어는 “카리스마 넘치는 카라얀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영광이었다”면서 “리허설 때 남성 단원들은 제 옆에 앉았다가도 슬그머니 의자를 밀어 저만치 떨어지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그는 ‘지금은 힘든 시기지만 결국 실력이 말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 당시 베를린 필하모닉의 단원들은 하나같이 자비네 마이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그 앞에 선 사람이 바로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베를린 필하모닉 수석 클라리네티스트였던 칼 라이스터(Karl Leister)이다. 그로인해 마이어는 당시 음악계 최대의 이슈메이커로 급부상했으며, 특히 카라얀과의 염문설로 인해 어딜 가도 주목받게 되었다. 마이어의 미모가 워낙에 출중했기 때문에 아름답지만 차가워 보이는 마스크, 깔끔하면서도 정갈한 테크닉,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뛰어난 음악적 해석, 보석 같은 톤까지 갖춘 그녀는 그렇게 새로운 클래식계의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결국 카라얀과 라이스터를 위시한 단원들의 싸움에서 마이어는 9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만 머물고 그 자리를 떠나게 되었고, 솔리스트로 독립했다. 하지만 지휘자 카라얀과 단원들 사이가 틀어지며 불길이 번졌다. 카라얀은 잘츠부르크 성령강림절 축제에 전통적으로 등장했던 베를린 필을 빼놓고 대신 빈 필하모닉을 불렀다. 그러자 베를린 필 단원들은 카라얀의 종신 지휘자 지위를 다시 고려해보겠다며 맞섰다. 한때 카라얀이 베를린 필을 떠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마이어가 스스로 물러나 것으로 사태는 진정했다. 마이어는 당시의 스캔들에 대해 "분명 음악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오래전의 일이고 이제는 역사에 속하기 때문에 자세히 말하긴 힘들다"고 밝히고 있다. 2008년 첫 내한공연에서 서울시향과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을 협연하였다. 마이어의 연주 스타일은 어디 하나 빠지거나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잡힌 연주에 있다. 풍부한 표현과 음악적이지만 지나치게 감성적이지도 않고, 빼어난 테크닉을 소유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테크닉적으로 흘러가지 않으며, 음정과 톤 하나 깨어지지 않는 정교한 연주력을 보여준다. 게다가 그녀가 높이 평가하는 점은 어떤 시대와 스타일에서도 최상의 연주를 보여주는 학구적인 모습까지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