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원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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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4/22(월)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비회원
2013.04.08
조회 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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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시 : 2013년 4월 22일 (월) 저녁 8시


2. 장소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 초대인원 : 5쌍 (1인 2매, 총 10매)


4. 작품설명 :


지휘 : 로린 마젤
협연 : 조성진(피아노)




-공연 개요-

거장 첼리비다케의 영혼이 살아 숨쉬는 바이에른 대표 오케스트라
2007년에 이어 6년 만에 세 번째 내한공연

전설의 거장 첼리비다케가 남긴 게르만의 전통적인 사운드를 묵묵히 지키는 뮌헨 필이 6년 만에 세 번째 내한 공연(1997 메타, 2007 틸레만)을 갖는다. 제임스 레바인, 크리스티안 틸레만에 이어 새로운 수장이 된 국제적 거물 로린 마젤이 지휘봉을 잡고 뮌헨 필의 새로운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할 것이다. 뮌헨 필은 오늘날 유럽에서도 가장 순수한 음악성과 철저한 통일성, 그리고 투명성을 자랑하는 오케스트라의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내 팬들에게도 기다려온 공연이 될 것이다. 가는 곳마다 새로운 음악적 전통을 확립하여 변함없이 사랑을 받고 있는 거장 로린 마젤이 투어에 합류해 관현악의 새로운 지표를 제시할 것이다. 프로그램은 고전주의 교과서 작품인 베토벤 교향곡 4·7번, 그리고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에 빛나는 무한 잠재력을 가진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역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한다. 또한 로린 마젤이 자랑하는 정확한 비트로 그의 장기라 할 수 있는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이 준비되어 고전과 현대의 조화와 뮌헨 필과 로린 마젤의 특성을 모두 보여 줄 수 있는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Program-
차이콥스키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오케스트라-
독일 전통 사운드의 수호자, 바이에른 클래식의 중심
뮌헨 필Die Munchner Philharmoniker

베를린, 런던, 파리, 그리고 뮌헨. 위 도시들의 공통점은 한 도시에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들을 최소 3개 이상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 3개 도시는 그 나라의 수도라 그렇다 치더라도 독일 남부 바이에른이라는 일 개 주의 수도인 뮌헨에는 2012년 11월 첫 내한한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을 비롯하여,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와 뮌헨 시를 대표할 수 있는 뮌헨 필 등 초일류 오케스트라가 세 개나 활동하고 있다. 한 도시에서 로린 마젤, 마리스 얀손스, 켄트 나가노 등 거장 지휘자를 동시에 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뮌헨 시민은 문화적 자부심에 가득 차 있다.

현대 뮌헨 음악문화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뮌헨 필 오케스트라. 1893년 문헌학자 프란츠 카임에 의해 설립되어서 ‘카임 오케스트라’로 출발한 이 악단은 창립 초기부터 당대 작곡가들의 초연작을 대거 소개하며 공격적 프로그램으로 명성을 굳혔다. 특히 1910년 말러 자신의 지휘로 초연된 교향곡 8번은 토마스 만, 버나드 쇼, 레오폴드 스토콥스키 등 신구 대륙 문화계의 지성들이 객석을 가득 채운 당대 문화사의 일대 사건으로 꼽힌다. 또한 지크문트 폰 하우제거가 재임하던 시기에는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기존의 린츠판본이나 빈 판본이 아닌 자필악보에 충실한 편집으로 재간행한 원전판 연주의 보급에 크게 이바지했다.

하지만 나치 집권 이후 악단의 성향이 친 나치로 기우는 바람에 1944년 전황의 악화로 활동 정지 조치를 당하기도 했으나 전후 미군정의 허가를 받고 새로 부임한 상임 지휘자인 한스 로스바우트의 지휘로 뮌헨 대학 강당에서 연주회를 진행했다. 카임 관현악단 시절 공식 데뷔 무대를 가졌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도 종종 객원 지휘자로 출연해 공연 수익금을 악단에 기부하기도 했다. 로스바우트의 후임으로는 프리츠 리거와 루돌프 켐페가 차례로 상임 지휘자 직책을 맡았고, 1979년 세르주 첼리비다케가 상임 지휘자에 부임하면서 악단의 명성이 급상승했다. 첼리비다케는 엄격하고 까다로운 리허설과 상업적인 녹음 거부, 돌발적인 언행 등으로 악명이 높았으나, 악단의 연주력과 표현력을 끊임없이 연마해 세계적인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관현악의 사제’로 불리며 예술적 완성도에 있어서 일체의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 첼리비다케로 인해 뮌헨 필은 ‘우월’ 하다기 보다는 ‘독특’한, 다른 악단과는 비교를 쉽사리 허용치 않는 유럽 관현악계의 이단아로 새롭게 자리 매김하게 된다. 첼리비다케는 공식적인 상업 녹음을 거의 하지 않았으나, 바이에른 방송을 중심으로 연주회 중계가 활성화되면서 그 음원을 무단으로 복제한 해적판까지 만들어지는 등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첼리비다케가 1996년에 타계한 뒤에는 3년 동안 객원 지휘 체제로 운영되다가 1999년 제임스 레바인이 창단 후 최초의 미국인 상임 지휘자로 부임했다. 레바인은 2004년에 보스턴 교향악단으로 옮길 때까지 직책을 유지했으며, 후임으로 독일 음악의 적자(嫡子)이자 수호자로 불리는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부임했고 2012-13 시즌부터 거장 로린 마젤이 악단을 이끌며 독일 정통 사운드와 마젤의 국제적 사운드의 조화로 새로운 명성과 도약을 쌓고 있다. 2차 대전으로 톤할레가 파괴된 후 레지덴츠 궁전이 있는 헤르쿨레스잘과 독일 박물관 등을 공연장으로 사용했으나, 1985년에 가슈타이크 필하모니가 완공되면서 상주악단이 되었다.




■ 역대 상임 지휘자
한스 빈더슈타인 (1893-1895)
헤르만 줌페 (1895-1897)
페르디난트 뢰베 (1897-1898, 1908-1914)
펠릭스 바인가르트너 (1898-1905)
게오르크 슈네보익트 (1905-1908)
한스 피츠너 (1919-1920)
지크문트 폰 하우제거 (1920-1938)
오스발트 카바스타 (1938-1944)
한스 로스바우트 (1945-1948)
프리츠 리거 (1949-1966)
루돌프 켐페 (1967-1976)
세르주 첼리비다케 (1979-1996)
제임스 레바인 (1999-2004)
크리스티안 틸레만 (2004-2011)
로린 마젤 (2012-2015)
발레리 게르기예프 (2015-)


■ Tips
뮌헨 필의 상주 공연장과 주요 활동
2차대전으로 톤할레가 파괴된 후 레지덴츠 궁전에 있는 헤르쿨레스잘과 독일 박물관 회의장 등을 공연장으로 사용했으나, 1985년에 가슈타이크 필하모니가 완공되면서 상주 악단이 되었다. 리거 재임기까지는 주로 바이에른 지방 내에서 유명한 악단이었으나, 켐페가 이어받은 후 녹음 활동을 적극적으로 시작하면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켐페의 후임으로 부임한 첼리비다케는 공식적인 상업 녹음을 거의 하지 않았으나, 바이에른 방송을 중심으로 연주회 중계가 활성화되면서 그 음원을 무단으로 복제한 해적판까지 만들어지는 등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첼리비다케는 만년에 소니 클래시컬이 영상물 형태로 브루크너 교향곡 6-8번을 제작하는 데 동의했고, 제작된 영상물은 LD와 비디오 테이프 등으로 유통되었다. 첼리비다케 사후 아들의 허락을 받아 EMI에서 방송 실황 음원을 토대로 공식 CD 세트들을 출반했으며, 특히 브루크너 교향곡의 녹음들은 극단적으로 느린 템포와 투명한 음향으로 화제가 되었다. 후임인 레바인은 욈스 클래식스에 음반들을 취입했으며, 최초로 미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악단의 음반 목록에 포함시켰다. 틸레만은 전속 음반사인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실황 녹음 위주로 음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상임 지휘자들 외에도 한스 크나퍼츠부슈가 브루크너 작품을 중심으로 몇 종류의 스튜디오 녹음과 실황 녹음을 남겼으며, 귄터 반트의 방송 음원도 헨슬러 등에서 발매되고 있다. 하우제거와 카바스타 재임기에 제국 방송에서 만든 방송용 녹음들도 프라이저와 뮤직 앤 아츠 등에서 복각되어 발매되었다. 정기 연주회 외에도 악단원들의 실내악 연주회와 오데온 광장 야외 연주회, 청소년 음악회와 어린이 음악회도 열리고 있으며, 부정기적으로 공개 리허설도 행하고 있다.




-아티스트-

Conductor 로린 마젤 Lorin Maazel(1930~)
무한대의 레퍼토리를 가진 지휘계의 진정한 수퍼 스타
레코딩과 실황 연주에서 드러나는 상이하면서 특이한 재능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빈 국립 오페라, 피츠버그 심포니,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뉴욕 필에서 뮌헨 필에 이르기까지 가는 곳마다 뚜렷한 족적을 남긴 거장 지휘자.

로린 마젤은 출생부터가 범상치 않다. 유대계 러시아인인 부친과 헝가리와 러시아의 혼혈인 모친 사이에서 프랑스의 파리 근교 뉘이에서 태어났다. 이처럼 그의 국제적인 출신 성분은 고전에서 낭만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가 세계 각국 작곡가의 작품해석에 능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마젤은 아주 어릴 때 일가가 피츠버그로 이주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서 이미 4살 때 놀라운 절대 음감을 소유했고 암보력도 뛰어났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로린은 지휘에 비상한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불과 8살에 그는 아이다호 대학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당시 그가 지휘한 것은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었다. 이 공연에 이어 그는 1년 후 뉴욕 세계 박람회에 출연하여 역시 대규모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지휘계의 신동의 출현’이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16세 때 피츠버그 대학에서 어학과 철학을 공부했으며 블라디미르 바칼레이코프로부터 바이올린과 지휘법을 배웠다. 이후 피츠버그 심포니의 부지휘자로 지휘대에 섰고, 1953년에는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본격적인 데뷔를 장식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성공하였다. 그 이후 세계에서 가장 젊은 지휘자로서 유럽 각국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음악제에 게스트로 초청되어 대활약을 시작하였다. 가장 큰 이슈는 1960년 30세의 나이에 역대 최연소 지휘자로서 바이로이트 음악제에 초빙되어 '로엔그린'을 지휘했고 1968년과 69년에 '반지' 전 4부작으로 지휘해서 실력을 인정 받아 마젤 경력에 금자탑을 이루어 냈다는 것이다.

이후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 음악 총감독(1965-71), 베를린 방송교항악단 음악감독(1965-75),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음악감독(1972-82),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상임(1977-82), 빈 슈타츠 오퍼 총감독(1982-84 음악감독 보다 한 단계 위의 직책)을 거쳤다. 빈 시절에는 극장의 상연 시스템을 무리하게 개혁하는 와중에 오스트리아 문화 장관과 충돌해서 단명했다. 천재성만큼 주변과의 충돌이 많았던 시기다. 카라얀이 베를린 필에 취임한 1950년대 중반부터 베를린 필과 레코딩을 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고 1960년대에는 서 베를린에 남아 도이치 오퍼와 방송교향악단을 통솔하면서 베를린 시민들에게 친숙한 지휘자가 되었다. 카라얀 사후 베를린 필의 후계자로 각광받았지만 아바도에게 자리를 넘기고 1989년 10월 베를린 필과 관계를 완전히 끊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1999년 까지 베를린 필의 출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빈에서 물러난 이후 마젤은 자신이 유아기부터 성년기를 보낸 피츠버그로 돌아갔고 피츠버그 심포니 수석 지휘자(1986-96),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음악감독(1988-91),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수석 지휘자(1993-2002), 뉴욕 필 음악감독(2002-2009)을 역임했다. 환경 문제에 대한 제언과 UN 자선 콘서트에 임하는 등 채리티 활동도 활발히 했고 2004년에는 단원들이 모두 단원이 아닌 솔리스트로 계약하고 있는 토스카니니 필 음악 감독에 취임했으며 2005년 5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근거한 자작 오페라 ‘1984년’의 런던 오페라 초연으로 갈채를 받았다. 2008년 2월 북한 동 평양 대극장에서 북미 관계의 긴장 속에서도 뉴욕 필 평양 공연을 지휘 해서 국제적인 화제가 되었다. 2012년부터 크리스티안 틸레만 후임으로 뮌헨 필 수석 지휘자로 취임했고 2015년 이후의 수석 지휘자가 결정될 때까지의 3년 계약했다. 음반도 지난 50년간 세계 각국의 오케스트라와 녹음하였는데, 특히 데뷔 초기인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과의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불새'(DG)는 녹음한지 50여년이 지났지만 명쾌한 해석으로 이 곡의 대표적 음반으로 꼽히고 있으며, 베를린 필과와 바그너 관현악 명곡집(RCA), 빈 필과의 말러 교향곡 전집(CBS), 신년음악회 실황(DG) 등은 여전히 애호가들 사이에서 명반으로 꼽히고 있다.

마젤의 데뷔 초기였던 1960년대, 예측을 벗어나는 독특한 템포와 강약으로 평단의 극찬과 비난을 동시에 받아왔다. 비범한 템포 속에서 음영의 대비를 뚜렷하게 조영하는 강약과 선이 굵은 타입의 고전-낭만주의 해석은 20세기 중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한 실황 연주에서 마젤은 깜짝 놀란 만큼 레코딩 때와 다른 지휘를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같은 실연이라도 기계 작용이 완전히 배제된 실황에서 마젤은 지휘대 위에서 뛰어오르거나 야릇한 제스처를 보여주는 등 음악을 몸 전체로 표현한다. 심지어 갑자기 지휘봉을 멈추고 마지막 박자만을 지휘해버리는 등 자유자재로 오케스트라를 이끈다. 청중의 신경을 일부러 자극하는 듯한 금관 악기의 강조, 의도적인 내성부의 확대, 구태여 노래하지 않는 특이한 아티큘레이션 등은 밋밋한 70년대 녹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레코딩만으로 지휘자의 전체 모습을 파악할 수 없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마젤은 동아시아에도 자주 들러 공연을 가졌다. 성남아트센터에서 장한나의 지휘를 코치하거나 찬조 출연한 것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12차례 내한 공연을 가졌다. 첫 내한은 1978년 클리블랜드와 함께였다. 1980년 빈 필, 81년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내한을 이끌었고 1988년 라스칼라 오페라와 필을 이끌고 서울올림픽 문화 축전에 참가했다. 1994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내한을 함께 했으며 1995년 피츠버그 심포니와 서울에 왔다. 2003년에는 첼리스트 장한나와 함께 서울시향 공연을 함께 했고 2004, 06, 08년 뉴욕 필의 내한공연을 함께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2012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한국 공연을 같이 했다. 일본에는 1963년 베를린 도이치 오퍼의 첫 일본 공연 때 칼 뵘의 부지휘자로 함께 한 이래 도쿄 심포니, 요미우리 심포니, 재팬 필과 교류했다. 이후 30회에 걸쳐 일본을 방문했다. 2010년 12월 31일에는 도쿄 문화회관에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했다.

무대를 떠난 마젤은 유능한 사업가의 인상을 준다. 언동에서 실수가 없으며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상대에 따라 각각의 언어로 대응하는 유럽 지식인의 면모를 자연스럽게 풍긴다.






Pianist 조성진 Cho Seong-Jin
성장 잠재력 무한대, 2011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에 입상한 기린아
조성진은 2008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2009년 일본에서 열린 제7회 하마마츠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아시아인 최초, 최연소로 우승하며 본격적으로 국제 무대에 두각을 나타내었고, 제 14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함으로써 그 실력을 인정 받았다.

콩쿠르뿐 아니라 연주 활동에 있어서도 국내 주요 오케스트라는 물론,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지휘 아래 서울 시향과 수차례 협연하였으며, 2010년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 2011년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마렉 야노프스키 지휘), 2012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 내한 공연에 협연자로 나섰다. 또한 대관령 국제 음악제와 서울 스프링 페스티벌에서 실내악 연주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실내악 연주 활동을 하였으며, 국내는 물론 일본과 러시아, 독일 등 국내외에서 매년 수십 차례 독주 무대를 선보이는 등 매우 광범위한 연주 활동을 소화해 내고 있다. 현재 파리 고등음악원에서 미셀 베로프를 사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