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고음악의 위대한 유산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
“태양왕 루이 14세 치하의 성당 연대기 ? 파리에서 스트라스부르까지”
? 일정 및 시간 2012년 6월 5일(화) 8pm
? 주최 및 장소 LG아트센터 (지하철2호선 역삼역 7번 출구)
프랑스 앙상블이 들려주는 풍요로운 프랑스 바로크 음악
윌리엄 크리스티가 지휘하는 레 자르 플로리상, 마르크 민코프스키가 지휘하는 루브르의 음악인들 등과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바로크 앙상블로 꼽히고 있는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Le Concert Spirituel)이 17세기 프랑스 교회음악을 들고 오는 6월 처음으로 내한한다. 1993년 처음 내한해 퍼셀의 <디도와 아네아스>, 샤르팡티에의 <악테온>등을 선보인 레 자르 플로리상 이후 그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국내에서 프랑스 고음악 앙상블이 연주하는 프랑스 바로크 레퍼토리를 만나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은 원래 1720년대 파리에서 시작되었다가 프랑스 혁명 발발로 1790년 중단되었던 근대화된 최초의 공공 연주회 시리즈의 이름이다. 이 이름을 빌어 1988년 지휘자 에르베 니케(Herve Niquet)가 창단한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은 프랑스의 위대한 바로크 음악 유산을 오늘날로 되살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특히 이들은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 센터(Centre de Musique Baroque de Versailles) 및 낙소스, 글로사 레이블과의 작업을 통해 샤르팡티에, 륄리를 비롯하여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숨은 보석과도 같은 브와모르티에, 캄프라에 이르기까지, 풍요롭고 장중하지만 놀랍도록 생동감 넘치는 17세기 프랑스 바로크 교회음악의 매력을 소개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태양왕 루이 14세 치하의 성당 연대기 ? 파리에서 스트라스부르까지”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의 첫 내한공연은 17세기 태양왕 치하의 프랑스로 관객들을 이끈다. 당시 태양왕 루이 14세가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베르사유 궁전에서 륄리(Lully)와 함께 화려한 바로크 예술을 꽃피웠다면, 베르사유 궁전 밖에서는 도시의 성당들을 중심으로 더욱 깊고 다채로운 표현을 담은 음악이 17세기 사람들의 영혼을 채워주고 있었다. “태양왕 루이 14세 치하의 성당 연대기 ? 파리에서 스트라스부르까지”라는 매력적인 부제가 붙은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의 공연은 바로 그 시대 위대한 프랑스 교회음악의 세 거장, 파리의 샤르팡티에(M. Charpentier), 트루아의 부테이에(P. Bouteiller) 그리고 스트라스부르의 브로사르(S. Brossard)의 음악을 한데 모았다.
12명의 남성 성악가와 저음 현악기가 부활시킨 평온한 17세기 프랑스 교회음악
부테이에의 레퀴엠, 브로사르의 스타바트 마테르 등 17세기 프랑스 교회음악으로만 구성된 이번 공연은 남성 성악가 12명의 중후한 목소리와 감미롭고 엄숙한 저음(低音)현악기가 어우러져 국내에서 보기 드문 장중하고 생동감 넘치는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17세기에 성당으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이들의 음악이 커다란 위로가 되었듯이,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이 들려줄 희망과 안식의 음악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에 더 없는 평온을 안겨줄 것이다.
■ 프로그램
“태양왕 루이 14세 치하의 성당 연대기 ? 파리에서 스트라스부르까지”
Splendour of the Cathedrals under Louis XIV: A musical voyage from Paris to Strasbourg
마르크-앙투완 샤르팡티에 (1643-1704)
Marc-Antoine Charpentier 데 프로푼디스, 스타바트 마테르
De Profundis, Stabat Mater
앙리 프레마르, 피에르 위가르, 루이 르 프랭스
Henri Fremart, Pierre Hugard, Luis Le Prince 모테트
Motets
세바스티앙 데 브로사르 (1655-1730)
Sebastien de Brossard 스타바트 마테르
Stabat Mater
피에르 부테이에 (1655/60-1717)
Pierre Bouteiller 레퀴엠
Requiem
▶ 지휘: 에르베 니케(Herve Niquet)
▶ 연주: - 남성 성악가 12명
: 오뜨 콩트르 2명 / 카운터 테너 2명 / 테너 4명 / 바리톤 2명 / 베이스 2명
(*오뜨 콩트르: 카운터테너가 아닌 매우 높은 음역의 테너, 테너보다 3도 정도 높음)
- 기악 앙상블 7명
: 오르간 1명 / 비올 5명 / 콘트라베이스 1명
■ 프로그램 소개
루이 14세 치하의 성당 연대기
Splendours of the Cathedrals under Louis XIV
글: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
19세기 초까지 자치 영역을 거느린 무수히 많은 공국들로 구성되었던 독일이나 이태리와는 달리, 프랑스는 매우 일찍부터 정치적인 통합을 이룩하였다. 특히 프랑스는 군주가 예술가들을 왕국의 수도로 집결시킬 정도로 독특했다. 루이 14세의 통치가 시작된 이래 그리고 1682년 베르사유로 왕궁이 옮겨지면서 이들은 왕에게 귀속되기 시작했고 그것이 가장 위대한 음악가들에게 직업적 그리고 예술적 이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태양왕 치하 베르사유 궁에서의 예술활동
교회음악은 스스로 유럽에서 “가장 독실한 기독교 국왕”이 되고 싶어했던 루이 14세의 바램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독실함을 널리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이해했기 때문에 정기 미사를 거르는 일이 없었고, 두 곡의 “프티 모테트(petit motet)”와 한 곡의 “그랑 모테트(grand motet)”가 연주되는 동안 이 행사들 하나하나를 엄청난 궁정의 볼거리로 만들었다.
(* “모테트”: 르네상스 시대 전례적이지 않은 텍스트를 지닌 종교 성악곡을 설명하는 데 흔히 사용된 프랑스 용어)
“모테트”라는 새로운 장르가 1640년대에 그 형태를 모두 갖추었다. 프랑스 작곡가들은 이탈리아의 형식을 따른 종교 콘체르토를 작곡하기 시작했지만, 전형적인 프랑스식 텍스트 해석을 간직하였다. 이 장르는 프랑스식 이름을 갖게 되어 소규모 콘체르토의 경우 “프티 모테트”로, 대규모 콘체르토는 “그랑 모테트”로 불리게 되었다.
이탈리아 종교 콘체르토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모테트는 텍스트의 독특함을 살리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한다. 또한 성악과 기악 솔리스트, 오케스트라와 복수 합창단(multiple choirs)까지 상당히 다양한 연주자층도 허락한다. 하지만 근엄한 왕가 예배를 존중하기 위해서 “베르사유 모테트”의 양식은 당대 이탈리아 음악의 화려한 표현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늘밤의 연주, 특히 피에르 부테이에의 “레퀴엠”에 대해서, 루이 14세가 모테트를 감상(심취)한 이후 프랑스 작곡가들이 다성 미사를 완벽히 버렸다는 것과, 연주 장르로서 계속해서 인기가 있었던 유일한 미사 부분이 바로 레퀴엠이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베르사유 궁전 밖의 자유로운 시도와 독특한 정체성
왕궁에 고용되어 있다는 것은 당시 매우 영광스러운 지위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왕의 용무에 발탁되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베르사유를 벗어난 프랑스의 지방들 역시 매혹적인 음악 활동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는 스트라스부르에서 유명했던 작곡가이자 수집가인 세바스티앙 드 브로사르나 기욤 푸아트뱅(Guillaume Poitevin)이 세운 많은 지역학교(Provencal School), 심지어 왕족이나 그 친척 귀족의 예배당 음악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그 곳의 작곡가들은 궁정에 고용되어 있는 작곡가들보다 더 많은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양식을 숭배하여 작품에 이를 결합시켰던 마르크-앙투완 샤르팡티에와 같은 작곡가들은 파리의 쌩 샤펠 성당에서 매우 환영 받았다. 텍스처의 투명함이나 웅변적 언어와 같은 프랑스의 양식적 특성을 간직한 샤르팡티에의 음악은(로마에서 까리시미의 제자) 이탈리아의 표현을 프랑스식 “고급 취향”과 결합시켜 매우 독특한 정체성을 확립하였기에 들으면 그의 음악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세바스티앙 드 브로사르는 1670년대 자신의 전(前) 고용주인 기즈 공의 자택에서 샤르팡티에를 만났을 것이다. 마드모아젤 기스는 당대 프랑스의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의 공주로 왕궁이 베르사유로 옮겨질 때까지 그녀의 가문은 프랑스 궁정의 공식 음악 및 파리 엘리트들이 선호하는 코즈모폴리티즘과 대척점을 이루며 루이 궁정 자체의 명망에 대적하고 있었다.
브로사르는 자신의 경력 대부분을 지방 성당들(스트라스부르, 모)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였고, 샤르팡티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작곡에서 감정적으로 고양된 텍스트 부분들을 나타내기 위해 표현 강한 불협화음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오늘날 브로사르는 악보나 교본 그리고 1660-70년대 프랑스 음악계에 관한 다양한 희귀 자료들을 수집한 매우 중요한 수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자료들은 현재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친-이탈리아 운동의 두 주요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는 샤르팡티에와 브로사르는 ? 그 누구보다 ? 프랑스 음악의 “순수성” 보존의 당위성에 대한 양극 논쟁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들이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처럼 그들은 루이 14세의 궁정에서 비위를 맞추며 살 수도 있었지만, 동시대의 그리고 국제적인 양식을 받아들이며 개인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데 힘썼다.
■ 연주자 소개
-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 Le Concert Spirituel (1988년 창단)
http://www.concertspirituel.com/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의 부활
본래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은 프랑스에서 최초로 열렸던 공공 연주회을 일컫는 이름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콘서트 시리즈 중 하나이다. 과거 교회나 왕궁의 통제 속에서만 가능했던 음악회는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이라는 이름의 연주회를 통해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으며, 비발디의 ‘사계’ 프랑스 초연이 이뤄지는 등 음악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로 기록된다. 근대 클래식 음악회의 모태로 여겨지기도 하는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은 1725년 파리에서 시작되었지만 프랑스 대혁명의 발발로 1790년 문을 닫게 되었는데 1987년 에르베 니케가 고음악 앙상블을 결성하면서 그 이름을 다시 사용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베르사유 궁전에서 연주되었던 大 프랑스 레퍼토리가 현대에 다시금 숨쉬게 되었다.
이러한 영감을 바탕으로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은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 센터(Centre de Musique Baroque de Versailles)와 공동 작업을 비롯, 캄프라, 브와모르티에를 거쳐 샤르팡티에부터 륄리에 이르기까지 풍요로운 프랑스 음악유산을 남긴 훌륭한 작곡가들의 업적을 되살리는데 기여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들은 이탈리아, 영국 혹은 다른 국가의 거장들에게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여 바로크 음악을 다루는 권위 있는 앙상블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은 살 플레엘(Salle Pleyel), 샹젤리제 극장(Theatre des Champs-Elysees), 베르사유 왕실 오페라 극장(Versailles Royal Opera)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갖고 있으며, 런던 바비칸 센터,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브뤼셀 보자르, 룩셈부르크 필하모니, 도쿄 오페라 시티 콘서트홀, 마드리드 국립 음악 오디토리움, 상하이 콘서트홀, 비엔나 테아터 안 데어 빈 등 세계 유명 콘서트홀 무대에 섰다.
고음악에 대한 열정, 그들만의 사운드
지휘자 에르베 니케는 열정적인 음악가들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음악을 해석하고, 악기를 만들고, 역사 연구를 하는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고악기 사운드와 더불어 음악 해석에 관한 최신 연구들 중에서도 가장 앞서나가고 있으며, 이는 에디슨 상을 수상한 “왕궁의 불꽃놀이”와 “수상음악”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러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은 자신들만의 특징적인 사운드를, 한 번 들어도 알아챌 수 있는 앙상블 고유의 사운드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이들 앙상블이 빚어내는 사운드는 듣는 이로 하여금 절대로 지루하게 들리지 않는 바로크 음악을 탄생시켰다.
다양한 연주활동 및 음반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은 프랑스 종교 음악에 주력하며 세계적으로 인정받았고, 더 나아가 서정적인 음악(lyrical music)에도 활동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은 브와모르티에의 “다프니스와 끌로에”, 라모의 “피그말리온”, 모차르트의 “돈 조바니”, 퍼셀의 “아더왕” 등의 오페라를 연주했으며, 데투슈의 “칼리로레”, 륄리의 “페르세포네”, 마레의 “세멜레”(2009년 에코 클라식 ‘올해의 오페라 음반’상 수상), 그레트리의 “앙드로마크”(2011년 아카데미 샤를르 크로 음반 대상 수상)등 잊혀진 서정적인 작품들을 되살리는데 많은 노력을 쏟았다. 이와 같은 모험적인 시도를 통해 질 & 꼬린느 베니치오(‘셜리 & 디노’라는 가명으로 알려짐), 장-폴 스카피타, 캐롤 아미티지, 조르주 라보당과 같은 연출가 및 안무가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2000년부터 이뤄진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의 독점적인 음반 작업과 더불어 프랑스 오페라를 포함한 일련의 작업들이 글로사(Glossa) 레이블(아르모니아 문디 유통)로 탄생하였다. 지난 20년 동안 에르베 니케와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은 주요한 음반을 내놓았는데, 앙상블이 시작된 이래로 50개 이상의 음반을 발매했고, 그 중 다수의 음반들이 프랑스를 비롯, 해외 언론으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몽펠리에 국립 오페라 극장에 상주하고 있는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은 프랑스 문화부의 지역 문화 사업국인 DRAC의 지원을 받고 있고 있으며 에어 프랑스의 협찬 및 BNP 파리바 은행그룹의 기금과 브뤼 기금의 지원을 받고 있다.
■ 지휘자 소개
- 에르베 니케 Herve Niquet (1957년 생)
에르베 니케는 마그리트 롱과 모리스 라벨의 제자를 사사하면서 오리지널 스코어(원전)을 연구하고 작곡가의 본래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을 함양시켜왔다. 하프시코디스트, 오르가니스트, 피아니스트, 보컬리스트, 작곡자, 합창 및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교육을 통해, 관습적인 접근을 피하고 본래의 것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진정한 연구자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음악적 자질을 키워나갔다. 그는 파리 오페라단에서 합창 감독(chef de chant)으로 일하며 발레 음악 작곡가와 작업해왔던 루돌프 누레예프와 세르주 리파와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원전 해석의 의미와 구전의 중요성을 재고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신념으로 에르베 니케는 1987년 프랑스 그랑 모테트를 되살리고자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을 창단하였다. 20년의 기간 동안 에르베 니케의 지휘 아래 앙상블은 바로크 음악 해석에 있어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단체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그들의 레퍼토리 역시 종교 음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교향곡, 오페라까지 스타일과 장르를 넓혀나가고 있다. 또한 프랑스 작곡가를 비롯, 이탈리아, 영국 작곡가의 알려진 혹은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재발견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런 활동의 연장으로 에르베 니케는 원래의 것에 가능한 한 가장 충실한 사운드를 찾아내기 위해 시대악기에 대한 최신의 연구를 적용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여러 세기를 지나도 프랑스 음악 안에는 하나로 연결되는 지속성이 존재한다는 관념을 유지하며, 그는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신포니아 바르소비아,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RIAS 실내 합창단, 뉘른베르크 슈타트오퍼 오케스트라, 몽펠리에-랑그독-루씨옹 국립 오케스트라와 같은 유수의 오케스트라 등을 객원지휘하면서 19세기와 20세기 초의 레퍼토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 에르베 니케의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 뻬이 드 라 루아르, 루앙 오페라, 피카르디, 리옹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단과 작업할 예정이다.
19-20세기 작품의 재발견에 관한 그의 모험적인 시도는 프랑스 낭만 음악 센터(Palazzetto Bru Zane)-2009년 베니스 프랑스 음악 센터(Centre de musique francaise a Venise)와 관련해 에르베 니케는 많은 프로젝트에 관여하였다-를 탄생시키는데 기여하도록 이끌었다. 예를 들어, 이 공동작업은 음악 부문 로마상 아카데미의 주제에 대해 그간 제작된 바 없는 혹은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을 일련의 CD로 녹음, 제작하는 것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에르베 니케가 지휘한 두 개의 음반이 발매 예정에 있는데, 먼저 2009년 11월 드뷔시 음반이 출시되었고, 더블 CD로 제작될 새로운 음반은 생상스의 음악으로 2011년에 출시되었다.
그의 활동은 또한 젊은 음악가를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바젤 스콜라 칸토룸, 앙브로네이 아카데미, 애틀랜틱 유스 오케스트라, 그 밖의 다양한 마스터 클래스를 열고 있으며, 해석이나 시대적 관습, 음악학의 최신 연구뿐 아니라, 많은 노력이 요구되는 음악가라는 직업에 관한 진실을 전수하는 것 역시 그에게 매우 중요한 일로 자리잡고 있다.
오페라를 사랑하는 에르베 니케는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를 지휘하거나 객원 지휘자의 자격으로 초청되어 정기적으로 성악곡을 지휘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는 조르주 라보당, 질 & 꼬린느 베니치오(‘셜리 & 디노’라는 가명으로 알려짐), 장-폴 스카피타, 크리스토프 막달레 등 다양한 감독들과 작업을 하였다. 또한 그는 몽펠리에 국립 오페라단과 가깝게 관계를 맺으며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합창단의 지휘를 맡아 정기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에르베 니케는 플람쉬 라디오 합창단(Vlaams Radio Choir)의 음악감독으로, 브뤼셀 필하모닉의 제 1 객원 지휘자로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2010-11 시즌에는 그간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가치를 가진 작품들인 프랑스 낭만 음악을 연주한 많은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았다. 그 중에서도 루엥/오트 노르망디 오페라 오케스트라, 피카르디 오케스트라, 몽펠리에 오케스트라, 브뤼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및 리옹 국립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았다. 에르베 니케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 훈장 슈발리에와 문화예술공로 훈장 오피시에를 수여 받았다.
우리는 ‘놀라움’을 연주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태양왕 루이 14세 치하의 성당 연대기”라는 프로그램으로 투어를 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에는 보석같이 소중한 피에르 부테이에의 “레퀴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앙리 프레마르 (누가 그를 알겠습니까?) 의 미사곡을 오로지 남성의 목소리로만 연주할 예정입니다. 저에게 이 음악은 즐거움에 즐거움을 합쳐 놓은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관객과 공연 기획사들이 잊혀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발견하는데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항상 같은 곡들을 원하고 있다는 데에 더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예를 들어 1650년에서 1760년 사이에 활발히 활동했던 프랑스 작곡가들의 이름을 적어보려고 한다면, 적어도 10장 이상의 종이가 필요하다는 것을 금새 알게 될 텐데 말이죠. 저 스스로도 일반적인 방식으로 공연 프로그램을 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우리 앙상블이 어떤 음악이나 작곡가를 중심으로 연주하는 것에 매우 흥미를 느낍니다. 그리고 관객들이 우리와 어떤 연결고리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 공연을 찾아오는 관객 또한 보람을 느낄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바흐의 b단조 미사나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관객들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12명의 성악가와 6대의 저음 현악기 그리고 오르간으로 이 놀라운 음악의 소리로 성당이 가득 차도록 해야 하기에 내게 부테이에는 모차르트 보다 더 중요한 작곡가입니다. 또 사실인 것은 나는 미지의 음악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달을 밟는 것은 위대한 것이니까요.
- 에르베 니케 (글로사 뮤직 인터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