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년 전통의 세계 최정상급 ‘보로딘 현악사중주단’ 내한공연
- 제2바이올린의 새 멤버 세르게이 로모프스키 합류 후 첫 내한 연주회로 변하지 않는 ‘보로딘 사운드’의 영광 재현
- 전 세계 클래식계의 극찬을 받았던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의 명불허전 레퍼토리 ‘차이코프스키 현악4중주’ 전 악장 국내 첫 연주
- 20세기 후반 알반 베르크 현악사중주단과 베토벤 해석을 양분했던 명성 확인할 베토벤 ‘대푸가’와 진정한 현악사중주곡의 탄생 알린 하이든 ‘러시아 4중주’ 제6번 연주
“보로딘 현악4중주단의 창단 멤버는 이제 한 명도 남아있지 않지만, 온기를 머금은 절제미가 담긴 조화로운 사운드로 20세기에 이들이 쌓아올린 명성은 조금도 퇴색하지 않았다.” - 2011 몬트리올 가제트
“현악4중주단의 멤버가 된다는 것은 일생동안 서로를 통해 배우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배들과의 연주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 보로딘 현악사중주단 비올리스트 이고르 나이딘
62년 동안의 ‘보로딘 현악사중주단’ 활동을 마치고 2007년 은퇴한 후 2008년 12월 세상을 떠난 첼리스트 발렌틴 벌린스키(Valentin Berlinsky). 그를 대신해 2007년 합류한 블라디미르 발신(Balshin)과 1974년부터 37년간 제2바이올린을 맡았던 ‘안드레이 아브라멘코프’의 뒤를 이어 지난 해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의 ‘사운드’에 들어온 ‘세르게이 로모프스키(Sergei Lomovsky)’. 이들의 합류가 전설로 불리는 67년 전통과 명성의 ‘보로딘 현악사중주단’ 앙상블이 살아있음을 한국 청중들에게 증명해 보일 수 있을 것인가.
한층 젊어진 멤버들로 전설의 역사 제2막을 열고 있는 세계 최정상급 실내악단인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이 오는 5월 4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내한 연주회를 갖는다. 67년 전통의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이 현재의 멤버로서는 첫 내한공연으로, 20세기의 영광이 21세기에 어떤 음색으로 전설을 이어갈지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의 변천, 그리고 현악 사중주의 살아있는 역사를 확인한다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은 1945년 창단 후 67년을 이어오며 실내악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와 전통을 인정받는 세계 최정상급 실내악단으로 손꼽힌다. 지난 2005년 창단 60주년을 맞이한 이들은 그동안 몇 차례 멤버교체가 있었고, ‘루벤 아하로니안’(제1바이올린), ‘이고르 나이딘’(비올라), ‘블라미디르 발신’(첼로), 그리고 지난 2011년 9월에 65년을 넘긴 전통의 실내악단에 동승한 ‘세르게이 로모프스키’(제2바이올린)가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의 현재 멤버를 이루고 있다.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은 1945년 모스크바 음악원에 재학 중이던 ‘로스티슬라프 두빈스키’(제1바이올린), ‘블라디미르 라베이’(제2바이올린), ‘루돌프 바르샤이’(비올라),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첼로) 네 명의 학생이 ‘모스크바 필하모닉 콰르텟’이라는 이름으로 창단하였고, 이들 모두는 ‘코미타스 콰르텟’의 비올리스트인 ‘미하일 테리안’의 실내악 클래스에서 함께 레슨을 받았다. 창단 직후 로스트로포비치가 떠나고 그 자리에 ‘발렌틴 벌린스키’가 들어왔다. 2년 후 제2바이올린을 연주하던 ‘라베이’가 ‘니나 바르샤이’로 교체되었고 5년 후에는 ‘야로슬라프 알렉산드로프’로 채워지면서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은 초창기 멤버를 확정지었다. 이들은 10년 동안 ‘모스크바 필하모닉 콰르텟’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러시아 작곡가 보로딘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현재의 이름으로 바꿨다. 이후 이들은 20세기 후반을 관통하는 현악 사중주단이 되었고 쇼스타코비치를 비롯한 수 많은 작곡가들이 그들에게 작품을 헌정했다.
지난 66년간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의 역사를 살펴보는 한 방법은 크게 제1바이올린(로스티슬라프 두빈스키, 미하일 코펠만, 루벤 아하로니안)의 교체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1945년부터 1975년까지 제1바이올린으로 활약했던 두빈스키는 콰르텟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만큼 대단한 영향력을 끼쳤던 인물이다. 1976년 서방으로 두빈스키가 망명함으로써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은 창단 이후 가장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삼십년 동안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의 리더로 활동한 두빈스키의 존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동시대 작곡가들과의 교감과 멤버들 사이의 파트너십은 모두 두빈스키의 리더십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두빈스키의 후임으로 새로 영입된 ‘미하일 코펠만’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의 전성기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갔다.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악장 출신인 코펠만은 20년 동안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을 이끌면서 위기를 중흥의 역사로 바꿔놓았다. 우리가 음반을 통해 듣게 되는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의 대부분은 코펠만이 제1바이올린을 연주한 것이다. 더구나 많은 이들이 우려한 음색의 변화도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두빈스키가 참여한 ‘보로딘 현악사중주단’(Melodiya/EMI)의 연주와 코펠만의 ‘보로딘 현악사중주단’(Teldec)의 차이코프스키 현악 사중주 전곡 연주를 비교해서 들어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코펠만의 뒤를 이어 1996년부터 세 번째 제1바이올린이 된 ’루벤 아하로니안‘은 라트비아 리가 출신의 아르메니아인이다. 코펠만처럼 그도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유리 얀켈레비치에게 바이올린을 배웠고 1974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1위없는 2위 수상자한 실력있는 연주자이다. 그는 1996년부터 현재까지 콰르텟을 이끌고 있는데, 이 아하로니안의 시대에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은 세계 음악사에 기념비 적이라 할 수 있는 창단 60주년 시즌을 맞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베토벤 현악4중주 전곡 녹음(샨도스 레이블 발매)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또한 지난 62년 동안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의 전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 온 창단 멤버 발렌틴 벌린스키의 은퇴(2007년)와 사망(2008년), 37년 이상 호흡을 맞춰온 제2바이올린의 안드레이 아브라멘코프의 은퇴(2007년) 등 그 어느 때보다 급격한 변화를 온 몸으로 경험하고 있는 리더이기도 하다.
앙상블에서 구성원의 변화는 필연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전통은 언제나 창립멤버에 의해 연결되는 것만은 아니다. 벌린스키는 은퇴한 이후에도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의 정신적 지주로서 예술자문 역할을 계속하였고, 아브라멘코프는 은퇴를 고려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새 멤버로 내정된 세르게이 로모프스키를 기존 단원들과 충분한 교감을 할 수 있도록 장기간을 두고 오랜 연습을 통해 ‘보로딘 사운드’의 전통을 습득하고 적응하도록 하였다. 실제로 2011년 현재의 멤버로 재정비한 뒤 개최된 수많은 공연에서 이들은 전성기 시절의 안정적인 사운드를 재현해내는 동시에 젊은 연주자들 특유의 민첩함과 보다 발전된 균형감각을 선보여 과거의 명성을 잃지 않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이제 ‘보로딘현악사중주단’은 5월 4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하이든홀)에서 한국 평론가들과 청중들에게 전설이라 불리는 ‘보로딘 사운드’의 명성이 퇴색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시간을 앞두고 있을 뿐이다.
1996년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만 선보였던 ‘차이코프스키 현악4중주’, 새로운 멤버로 한국 청중 앞에서 전 악장 연주... 평가 기다려
5월 4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이들은 처절한 애절함이 담긴 ‘안단테 칸타빌레’로 더욱 잘 알려진 차이코프스키 현악4중주 제1번을 비롯해 최고 권위의 해석을 인정받아 온 베토벤의 ‘대푸가’, 현악4중주의 진정한 탄생을 알린 작품인 하이든의 ‘러시아 4중주’까지, 정통 실내악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줄 다양한 레퍼토리로 작곡가 내면의 깊은 소리를 끌어낼 예정이다.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에게 차이코프스키 현악4중주곡은 특별하다. 지난 1994년 차이코프스키 현악 4중주 1?2?3번을 담은 텔덱 레이블이 국내 클래식 음반계에서도 돌풍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클래식계는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의 차이코프스키 현악4중주곡 연주에 열광했다. “이 탁월한 음반은 차이코프스키 해석의 결정체이다”(BBC뮤직매거진 1994년 2월호)라는 찬사와 함께 1994년 그라모폰 실내악 부문상, 95년 클래식 CD실내악 부문상을 수상했다. 당시 그라모폰의 음반 리뷰를 담당했던 로버트 코완은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의 연주는 앞으로 모든 차이코프스키 현악4중주의 기준이 될 것이다. 영감에 찬 이들의 완벽한 연주는 듣는 이에게 잊을 수 없는 감흥을 안겨준다”고 평하기도 했다.
1994년 전 세계 클래식계의 극찬을 받은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의 새로운 멤버들이 차이코프스키 현악4중주의 그 풍부하고 감성적인 색채감과 내면의 목소리를 아람음악당에서 한국 청중들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지를 지켜볼만하다. 특히, 이 곡은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의 첫 내한공연이 있었던 1996년 예술의전당 연주에서 2악장 만을 선보인 이후, 16년 만에 새로운 멤버들이 한국 청중에게 전 악장을 들려주는 연주여서 국내 클래식 평론가와 관객에게 큰 관심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의 내한 연주회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추천이 큰 역할을 했다. 국내 최고의 콘서트홀 음향을 자랑하는 아람음악당이 ‘보로딘 사운드’의 중후함과 섬세함을 온전하게 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내한 연주회는 오는 5월 4일 오후 8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하이든홀)에서 열린다. 예매문의는 1577-7766, 2만원~7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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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 현악사중주 Bb장조
Tchaikovsky ‘QuartetSatz’ in Bb Major
차이코프스키 현악사중주 D장조 제1번 op.11
Tchaikovsky String Quartet No.1 in D Major Op.11
하이든 현악사중주 D장조 Op.33-6
Haydn String Quartet in D Major Op.33-6
베토벤 ‘대푸가’ Bb장조 Op.133
Beethoven ‘Grosse Fugue’ in Bb Major Op.133차이코프스키 현악사중주 Bb장조
Tchaikovsky ‘QuartetSatz’ in Bb Major
차이코프스키 현악사중주 D장조 제1번 op.11
Tchaikovsky String Quartet No.1 in D Major Op.11
하이든 현악사중주 D장조 Op.33-6
Haydn String Quartet in D Major Op.33-6
베토벤 ‘대푸가’ Bb장조 Op.133
Beethoven ‘Grosse Fugue’ in Bb Major Op.133
이준형 음악칼럼니스트의 보로딘 현악사중주단과 곡 소개
이준형 (음악칼럼니스트)
러시아는 분명 체코나 헝가리 같은 나라에 비하면 실내악으로 유명한 나라는 아니다. 하지만 음악의 강국답게 실내악 장르 중에서도 위대한 작곡가들이 자신의 가장 깊은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이상적인 매개체로 여겼던 현악 4중주 분야에서는 굵직한 흔적을 남겼다. 1923년에 창단된 베토벤 사중주단(창단 당시 이름은 모스크바 음악원 사중주단)은 쇼스타코비치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 세계적인 앙상블로 명성을 누렸으며, 비슷한 시기에 잇달아 등장한 코미타스 사중주단과 글라주노프 사중주단, 볼쇼이 극장 사중주단 역시 서로 경쟁하며 첫 번째 전성기를 구가했다. 러시아 현악 사중주단 특유의 힘 있고 격렬한 다이내믹과 때로는 정연한 음색을 포기하면서까지 얻어내는 강렬한 감정 표현은 이미 이때부터 뚜렷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한편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부터 러시아의 음악 활동은 더욱 활기를 찾았으며 그 선두 주자는 바로 모스크바 음악원 학생들로 이루어진 보로딘 사중주단(1945년 창단)과 레닌그라드 음악원 학생들로 이루어진 타네예프 사중주단(1946년 창단)으로, 쌍벽을 이루는 두 단체야말로 하나둘 활동을 멈추었던 선배들의 뒤를 이어받아 20세기 러시아 실내악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간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주로 러시아 국내에 머물렀던 타네예프 사중주단에 비해 이미 냉전 시대부터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에밀 길렐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등과 함께 소련을 대표하는 연주 단체로 활발한 국제적 활동을 선보였던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은 지금까지 세계 최고의 현악사중주단으로 군림하며 67년 동안 무수한 전설을 만들어냈다. 이제 창단 단원이자 앙상블의 모든 연주 활동을 기록했던 전설적인 기록자이며, 60여년 동안의 활동을 마치고 2007년에 은퇴한 후에도 다른 단원들의 후견인이자 정신적 멘토 역할을 해주었던 첼리스트 발렌틴 벌린스키(Valentin Berlinsky)가 2008년 12월에 세상을 떠난 이후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의 역사는 전설적인 영광을 뒤로 하고 이제 새로운 단원들과 함께 진정한 2막으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원들이 모두 바뀐 후에도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저 유명한 ‘보로딘 사운드’일 것이다.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은 1970년대에 단원들이 일부 바뀐 후 ‘보로딘 사운드’를 유지하기 위해서 2년 동안 공개 연주 활동을 하지 않을 정도였는데, 이렇게 독특한 음색을 변함 없이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대부분의 사중주단에서는 제1바이올린이 리더를 맡는데 비해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은 초창기 이후 첼로가 악곡 해석을 이끌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마 벌린스키 은퇴 이후 첼리스트 자리를 이어받은 블라디미르 발신(Vladimir Balshin)이 벌린스키의 제자라는 점도 한 요소일 것이다. 조용한 부분에서도 결코 느슨해지지 않는 집중력과 서로에게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는 내면적인 조화, 옛 베토벤 사중주단과 타네예프 사중주단을 제외하면 비교 대상을 찾을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감정 표현은 여전히 보로딘 사중주단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이 언제까지나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고 이를 재현하는 데만 열중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면서 이제 ‘보로딘 현악사중주단’ 역시 조금씩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제1바이올린인 로스티슬라프 두빈스키(Rostislav Dubinsky)가 서방으로 망명하기 이전, 그와 야로슬라프 알레산드로프(Yaroslav Alexandrov), 드미트리 셰발린(Dmitry Shebalin), 발렌틴 벌린스키로 이루어진 초창기 단원들이 1960년대에 녹음한 보로딘 4중주 1번, 2번(Melodiya)과 벌린스키를 제외한 모든 단원들이 교체된 새로운 사중주단의 베토벤 4중주 전곡(Chandos) 및 보로딘 4중주 2번(Onyx), 그리고 블라디미르 발신이 새롭게 첼로를 맡은 후 녹음한 보로딘 4중주 1번(Onyx)과 하이든의 <러시아> 4중주 시리즈(Onyx)를 비교해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앙상블의 정체성이 어떻게 조금씩 바뀌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거칠게 몰아붙이는 격렬한 다이내믹과 뚜렷한 대조감, 그리고 중후한 음색이 두드러지는 옛 녹음에 비해 지금은 약간 가벼운 색채를 부여하면서 악상과 형식이 바뀔 때마다 독특한 분위기와 색채, 섬세한 뉘앙스를 강조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특히 빠른 악장에서 모든 성부와 음표를 또렷하게 표현하는 신중한 균형 감각은 옛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에서는 찾기 어려웠던 부분이며, 다양한 작곡가와 음악에 대한 양식감도 좀 더 명확해졌다. 좀 더 선명하고 맑게 울리는 루벤 아하로니안(Ruben Aharonian)과 안드레이 아브라멘코프(Andrei Abramenkov)의 바이올린 화음은 러시아 현악 사중주단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21세기 우리 시대를 호흡하고 있는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1975년부터 활동했던 아브라멘코가 은퇴하고 세르게이 로모프스키(Sergey Lomovsky)가 가세하면서 더욱 젊어진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이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보로딘 현악사중주단’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이루었던 쇼스타코비치나 프로코피예프의 곡이 없는 것이 살짝 아쉽지만 오랜 세월 동안 사중주단의 핵심 레퍼토리이자 보로딘과 함께 러시아 4중주 레퍼토리를 대표하는 차이코프스키를 비롯해서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과 함께 20세기 후반 베토벤 해석을 양분했던 오랜 명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대푸가>, 그리고 얼마 전 전곡 음반을 발매해서 명쾌한 비르투오지티와 작곡가 특유의 산뜻한 유머를 잘 살린 섬세한 악곡 해석, 언제나 음악의 흐름을 잘 드러내는 적절한 템포, 빠른 악절에서도 결코 선명한 아티큘레이션을 놓치지 않는 고도의 집중력으로 큰 찬사를 받았던 하이든의 <러시아> 사중주 6번 D장조를 아우르고 있어서 매우 흥미롭다.
? ‘보로딘 현악사중주단’ 소개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은 66년 이상 실내악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와 전통을 인정받아 온 세계 최정상급 실내악단이다. 독보적인 해석으로 존경받고 있는 베토벤과 쇼스타코비치를 비롯해 모차르트에서 스트라빈스키에 이르는 광범위한 레퍼토리를 자유자재로 선보이고 있다.
특히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거의 모든 현악 4중주곡 연주를 함께 연습하며 보로딘 현악사중주단과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으며, 러시안 레퍼토리에 대한 이들의 해석은 독보적인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절대적인 해석으로 인정받는 쇼스타코비치 전곡 연주회는 빈, 취리히, 프랑크푸르트, 마드리드, 리스본, 세비야, 런던, 파리, 뉴욕을 포함한 전 세계 무대에서 개최되었으며, 세계 유수 공연장의 초청을 받아 공연하는 동시에 최근에는 슈베르트, 프로코피예프, 보로딘, 차이코프스키 등 보다 폭넓은 레퍼토리의 공연을 다시 선보이며 찬사를 받고 있다.
1945년, 모스크바 컨서바토리의 학생 4명이 모여 모스크바 필하모닉 현악사중주단이라는 이름으로 결성한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은 이로부터 10년 후,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제1바이올린의 루벤 아하로니안과 비올라의 이고르 나이딘은 1996년부터 멤버로 활동하였고, 블라디미르 발신은 2007년, 창단 멤버이자 전설의 첼리스트였던 발렌틴 벌린스키가 은퇴한 여름부터 첼로를 맡고 있다. 또한 지난 2011년부터는 1975년부터 활동했던 안드레이 아브라멘코프의 뒤를 이어 유리 바쉬메트가 이끄는 ‘모스크바 솔로이스츠’의 제2바이올리니스트였던 세르게이 로모프스키가 제2바이올린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은 현악 4중주곡을 연주하는 동시에 실내악 레퍼토리에 대한 보다 깊이있는 탐구를 위해 유리 바쉬메트, 엘리자베스 레온스카자, 올렉 마이젠베르크,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등 다른 뛰어난 연주자들과의 합동 무대도 꾸준히 선보이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마스터클래스를 열고 있다.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의 60주년 기념 시즌에는 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헤보우와 빈 무지크페라인 홀에서 베토벤 현악4중주 전곡 연주회를 개최했으며, 파리 샹제리제 극장와 런던 위그모어 홀, 모스크바 등지에서 이들의 업적을 기리는 헌정 음악회가 열렸다. 마드리드, 로테르담, 브뤼셀, 제네바, 뮌헨, 리스본, 바르셀로나, 아테네, 쾰른, 이스탄불, 취리히, 베를린, 모스크바, 뉴욕, 런던 등 전 세계 무대에서 모차르트, 슈베르트,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스트라빈스키, 쇼스타코비치, 보로딘 등을 연주하는 리사이틀도 개최되었다.
오닉스 레이블에서 첫 출시된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의 ‘보로딘, 슈베르트, 베베른, 라흐마니노프’ 음반은 2005년 그래미상의 “최고의 실내악 연주상” 후보에 올랐다. 그 외에도 이들은 수십년에 걸쳐 EMI, RCA, Teldec 등의 레이블로 완성도 높은 여러 장의 음반을 남겼으며, 그중 텔덱에서 출시된 차이코프스키 ‘현악 4중주’와 ‘플로렌스의 추억’, 슈베르트 ‘현악4중주’, 하이든의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일곱 말씀’과 ‘러시안 소품집’ 등이 모두 호평 받았다. 특히 차이코프스키의 음반은 1994년 그라모폰 상을 수상하였으며, 샨도스는 이들의 60주년을 기념하여 베토벤 현악4중주 전곡집을 출시한 바 있다.
? '보로딘 현악사중주단' 멤버 소개
(왼쪽부터 세르게이 로모프스키, 블라디미르 발신, 루벤 아하로니안, 이고르 나이딘)
루벤 아하로니안(Ruben Aharonian) : 제 1 바이올린
1947년 라트비아 출생.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했으며 얀켈레비치, 레오니드 코간 교수로부터 사사했다. 에네스쿠를 비롯해 몬트리올, 차이코프스키 등 여러 국제 주요 콩쿨에서 수상한 바 있다. 현재 그는 예레반 국립 음악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수많은 음반 레코딩과 유럽, 북남미 연주 투어를 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보로딘 현악 사중주단에는 1996년에 합류했다
세르게이 로모프스키(Sergey Lomovsky) : 제 2 바이올린
1969년 생.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하였다. 1992년부터 유리 바쉬메트(Yuri Bashmet)가 이끄는 모스크바 솔로이스츠(The Moscow Soloists)의 제2바이올린 수석으로 활동하며 에비앙 로스트로포비치 음악제, 몽트뢰, 베르비에 등 유럽 유수의 음악 축제에 초청되었고, 2007년 발매한 스트라빈스키와 프로코피예프 음반으로 그래미 상을 수상하였다. 2011년 안드레이 아브라멘코프의 뒤를 이어 보로딘 현악4중주단의 제2바이올린 주자로 합류하였다.
이고르 나이딘(Igor Naidin) : 비올라
1969년 생. 7살부터 음악을 시작해 이후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유리 바쉬메트 지도 아래 비올라 공부를 한 이고르는 1995년 제2회 모스크바 국제 비올라 콩쿠르에서 수상했으며 런던 국제 현악사중주단 콩쿠르에서 입상한 ‘Quartetto Russo’의 창단 멤버이기도 하다. 미하일 코펠만과 발렌틴 베를린스키로부터 정기적으로 지도를 받았다.
블라디미르 발신(Vladimir Balshin) : 첼로
1973년 생.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하였고, 샤코프스카야 사사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루소’ 현악4중주단의 단원으로 활동하며 1990년 이탈리아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였고, 1991년 영국 콩쿠르에서 3위에 올랐다. 1994년 파리에서 열린 첼로 국제 콩쿠르에서 로스트로포비치 특별상을 수상하였으며, 1998년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와 2000년 크로아티아 야니그로 국제 첼로 콩쿠르에서 우승하였다. 1998년부터 브람스 트리오 단원을 역임했으며, 1999년부터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2002년 러시아 인민예술가 칭호를 부여받았다.